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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신문 기고문] 첨단기술시대 변호사와 변리사 협력 절실하다

첨단기술시대 변호사와 변리사 협력 절실하다

(법률신문, 2023316일자)


                                                                                                                                                                 김명신

                                                                                                                                                                 전 대한변리사회장


변호사가 특허침해소송의 대리인으로 선임되어 있는 사건에서,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 변리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추가할 수 있는 변리사법 개정안들이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하여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되었으나, 국회 법사위원회는 이 법안들을 심의도 하지 아니한 채 회기만료로 폐기시켜 왔다.


또다시 20225월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민사소송법상 변호사대리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변리사가 법정에 출석할 때에는 항상 변호사와 함께 출석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변리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법사위원회는 이번에도 법안심의 소위원회에서 더 심의하기로 의결하였다.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벌써 세 번째이고 17년이나 지난 지금 무엇을 더 심의하여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면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을 대리할 수 있는 실무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대한변리사회는 1996년부터 윤관 대법원장의 찬성을 받아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변리사들에게 민사소송실무 연수교육을 실시한 이래, 해마다 이 소송실무 교육을 실시하여 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7년부터는 민사소송법이 변리사시험 주관식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었고, 1998년에 설립된 특허법원에서 변리사들이 25년간 특허의 무효, 특허의 정정허가, 특허권의 권리범위 확인 등 특허심결취소송을 대리하여 오고 있다.

일반법원에서 변호사가 대리하고 있는 특허침해소송과 특허법원에서 변리사가 대리하고 있는 특허심결취소소송의 공통된 쟁점은 문제가 되는 기술이나 공지기술이 특허권의 권리범위내에 속하는지 여부이고, 위의 두 가지 소송 모두 그 절차는 민사소송법에 따르고 있다.

1996 Y 회사와 S 회사 간에 벌어진 기저귀에 관한 특허소송에서 대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무려 11 8개월이 소요되었는데, 이와 같은 사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욕을 송두리째 좌절시킴은 물론이고 관련 기업은 오랜 기간 동안 소송에 휘말려 제대로 사업을 할 수가 없게 된다. 특히 특허출원 후20년으로 한정된 특허권의 존속기간을 고려하여 보면, 특허소송의 신속한 확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였다. 이 소송이 이렇게 까지 지연되었던 이유는 특허관련소송이 이원화되어 있었던 것도 그 하나의 이유였지만, 특허침해소송에서 특허의 무효 여부를 다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나 판사가 다 같이 기술내용을 잘 몰라 특허무효소송의 최종 판결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법원조직법을 개정하여 특허침해사건의 관할법원이 집중되었지만, 관할법원만 집중된다고 해서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송대리인이 기술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승소 확률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소송진행도 촉진되어 기술수명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 진행되는 첨단기술에 관한 특허침해소송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며 유럽에서 진행되는 특허소송비용 또한 막대하다. 이런 국제 특허침해소송이 우리나라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대부분의 변호사는 법정에 참석한 변리사가 써준 쪽지로 지금도 변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과 애플이 양사의 명운을 걸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전 세계적으로 핸드폰특허 침해소송을 수행할 때에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대리하였으나, 바로 이 국제적인 소송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될 때에는 변호사만이 대리하였다. 이 소송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될 때의 쟁점들을 살펴보면, 특허권의 권리범위, 공지기술과 특허권리범위와의 비교, 표준기술과 특허기술의 비교, 특허무효 여부(신규성, 진보성), 피고기술과 특허기술의 비교, 특허권의 침해(직접 또는 간접) 여부, 특허권리의 소진 여부, 권리남용 여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금반언(Estoppel)원칙 위반 여부, 손해배상액의 산정,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허여하였는지(FRAND) 여부 등과 같은 기술적 쟁점과 법률적 쟁점들이 있었다. 따라서 이런 소송은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대리하는 것이 소송당사자의 이익에도 부합하고, 적정, 신속이라는 민사소송제도에도 맞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허침해소송은 변호사와 변리사가 함께 일하고 있는 대형 로펌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소송비용이 지나치게 비싸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소송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소송을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나, 변리사에게 추가적으로 소송대리권을 허용하면 중소 로펌의 변호사도 외부 변리사와 함께 특허침해소송을 수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소송비용은 오히려 저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허용하면 소송비용이 더욱 비싸게 된다는 주장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탁상공론이다.

사법부가 우리나라보다 더욱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2002년 사법개혁심의회가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허용하였다. 그랬더니 변호사만이 특허침해소송을 대리할 때보다 평균 10개월의 소송 기간이 단축되었다고 한다.

특허침해소송을 경험한 대다수의 우리 기업들이 특허출원을 할 때부터 기술내용을 잘 알고 있는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지식재산단체총연합회, 벤처기업협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기술사회 등 모든 과학기술단체와 관련 산업계가 오랜 기간 염원하여 왔으며, 최근에는 일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도 국제적인 특허소송에서 우리 기업들이 승소하기 위하여 이를 지지하고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변리사법을 개정하여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도 대리할 수 있도록 입법하는 방안을 설시한 바 있다.

외국의 입법례로서는 미국은 물론이고, 금년 6월에 개원하는 유럽통합법원에서 유럽 27개국과 영국, 일본 및 중국이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허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첨단기술에 대한 안보가 강화되어 가고 있는 첨예한 기술전쟁시대에 즈음하여, 도도한 국제조류를 참고로 하여 볼 때, 우리 벤처기업들의 기술보호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편견을 변경할 때가 되었다. 따라서 이번 변리사법 개정을 결코 변호사, 변리사만의 직역갈등으로만 보아서는 아니 된다.

한편, 지식재산기본법 제5조는지식재산과 관련되는 법률을 개정하는 경우, 이 법에 맞도록 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동법 제21조에는 "정부는 지식재산 관련 분쟁해결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관련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개정된 국회법 제32조의 5에는법안심사 시 이해충돌의 우려가 있는 의원은 그 법안의 표결이나 발언의 회피를 신청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계대상이 되며, 개정된 국회법 제86조 제5항에서는법사위원회는 회부된 법안에 대하여 체계와 자구의 심사범위를 벗어나 심사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도 있으므로 국회의 변리사법 개정안 심의를 모두가 주시하고 있다.

끝으로 특허권의 한정된 존속기간을 감안하여 신속, 정확한 판결을 받도록 하고,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국익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변리사법 개정안이 이번에는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여 본다.